하논(하논마르)

오후 네 시, 천 년의 시간을 품은 제주 남쪽 작은 화산호를 걷다

제주에는 저마다의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오름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하논, 마을 삼춘들이 친근하게 부르는 하논마르는 제주의 다른 오름과는 또 다른 특별함을 지닌 곳이다. ‘하논’은 제주어로 '크고 넓은 논'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으며, ‘마르’는 화산 폭발로 인해 형성된 화구를 뜻한다. 즉, 하논마르는 제주의 긴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거대한 논 형태의 분화구를 의미한다. 마을 삼춘들은 이곳을 이렇게 말했다. “하논마르는 족아도 하영 오래된 곳이라게. 올라서보민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나쿠다. 제주의 진짜 이야기가 살아있는 오름이여마씀.” 하논마르를 찾은 날은 가을의 끝자락, 오후 네 시쯤이었다. 이 시간의 제주는 부드럽고 따뜻한 햇살과 맨도롱한 바람이 모든 풍경을 더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오름 입구에서부터 펼쳐진 길은 부드럽고 넓었으며, 마치 오랜 세월을 품고 있는 듯 천천히 걸음을 옮기게 했다. 탐방로는 족아도 완만하고 걷기 좋은 길이었다.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흙의 감촉은 부드럽고 편안했으며, 길 양옆으로 피어난 야생화와 억새는 오후 햇살에 반짝이며 부드럽게 흔들렸다.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돌탑들이 놓여 있었다. 제주 사람들은 이곳에서 오랜 세월 가족의 평안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작은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나 역시 작은 돌 하나를 골라 정성스럽게 올리며 소소한 바람을 빌었다. 중턱에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논마르의 넓고 깊은 분화구는 정말로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넓게 펼쳐진 논 형태의 분화구 안쪽은 고요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했고, 깊은 곳에는 물기가 남아 있어 작은 습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습지는 다양한 새들이 쉬어가는 공간이 되어 하논마르의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제주 삼춘들이 자주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논에 오르면 진짜 제주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고 마음이 족아도 고망지고 편안해지쿠다.” 정상에 도착하자 시야가 탁 트이며 더욱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제주의 남쪽 바다가 멀리서 반짝이고, 서귀포의 작은 마을 풍경이 따뜻하게 펼쳐져 있었다. 특히 정상에서 내려다본 하논마르의 분화구는 정말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곳에 앉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깊은 사색에 빠지게 했다. 잠시 정상에서 눈을 감고 바람 소리를 들었다. 고요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지나가자, 제주의 천 년의 이야기가 조용히 들리는 듯했다. 하논마르에서의 이 순간은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며 마음 깊이 여운을 남기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내려오는 길, 오후 햇살은 더욱 부드럽게 길을 비추었고 작은 들꽃과 억새가 잘 가라고 부드럽게 흔들리며 손짓했다. 오름을 내려오는 내내 하논마르에서의 시간이 너무나 특별해 발걸음이 아쉬웠다. 하논마르 주변은 특별한 관광시설 없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더욱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복잡한 관광지 대신, 천천히 제주의 깊고 오랜 이야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오름은 더없이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다음에 다시 하논마르를 찾는다면, 역시 오후 네 시쯤 부드러운 햇살과 함께 제주의 긴 역사를 담은 특별한 분화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다시 만나고 싶다. 그렇게 하논마르는 제주에 살아가는 내게 언제나 깊고 고즈넉한 위로와 휴식을 주는 특별한 장소로 남을 것이다.

해발고도약 53m 정도로 매우 낮아 누구나 편안히 방문할 수 있습니다.
소요시간왕복 약 30분 내외의 가벼운 산책이 가능한 곳입니다.
길 상태평탄한 흙길로 걷기에 매우 좋으며, 분화구 주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난이도매우 쉬움 (아이, 노약자 등 모두가 편안히 방문할 수 있는 수준)
주변 환경넓은 분화구(마르)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으며, 다양한 식생과 습지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계절 추천봄(다양한 식물이 싱그럽게 피는 시기), 가을(억새와 가을 식물이 아름다운 시기)을 추천합니다.
분위기매우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이며, 역사적 깊이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문화/설화하논마르는 오랜 세월 제주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사용된 분화구로, 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주의 깊은 이야기가 담긴 특별한 장소로 여겨져 왔습니다.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호동 149번지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