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망오름 (산158-2번지)

오후 네 시, 제주의 고요한 바람길을 따라 걷는 작은 사색 여행

제주에서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이름이 같은 오름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이름이라 하더라도 저마다 숨겨진 이야기와 매력이 달라 매번 새로운 감동을 주곤 한다. 이번에 찾은 쳇망오름 역시 앞서 만난 쳇망오름(망체오름)과는 다른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이름에서부터 은은한 정겨움이 느껴지는 쳇망오름은 제주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리고 있었다.

"쳇망오름은 족아도 편안허게 생겨서 올라보민 마음이 조냥 편안허고 바람이 맨도롱허게 불어와 사색하기 좋수다."

쳇망오름을 찾은 날은 깊어진 가을 오후 네 시 무렵이었다. 이 시간은 제주의 부드러운 햇살이 가장 아름답게 내려앉고, 바람이 적당히 불어 걷기 좋은 때이다. 오름 입구에 들어서자 흙길이 부드럽게 펼쳐졌고, 억새와 키 작은 나무들이 길을 따라 부드럽게 어우러졌다. 탐방로는 족아도 완만하고 편안해서 천천히 걸으며 사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천천히 걷다 보면 발 아래에서 느껴지는 흙의 부드러움과 억새가 부드럽게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사이로 조용히 불어오는 바람은 마음속 깊이 편안함을 더해주었다. 길 곳곳에는 제주 사람들이 가족의 평안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쌓아 놓은 작은 돌탑들이 보였다. 나 역시 작은 돌 하나를 골라 조심스럽게 올리고, 소박한 소원을 빌어보았다.

중턱쯤 올라 잠시 쉬며 주변을 둘러보니, 오름의 능선이 더욱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오름 정상부의 둥글고 부드러운 능선과 억새가 은빛으로 빛나는 모습은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을 선사했다. 멀리 펼쳐진 제주 바다와 중산간 들판의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고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문득 마을 삼춘들이 자주 하던 말이 떠올랐다.

"쳇망오름 위에서 제주를 바라보민 족아도 하영 시원허고, 마음속에 복잡한 생각도 다 날아가버리쿠다. 여기는 정말로 제주에서 숨겨진 좋은 오름이라마씀."

정상에 도착하자 시야가 더욱 탁 트이면서 제주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억새와 능선 너머로 보이는 제주의 푸른 바다와 중산간 지역의 고즈넉한 풍경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정상에서 잠시 눈을 감고 바람 소리를 느껴보았다. 조용히 불어오는 바람이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따뜻하고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쳇망오름에서의 이 시간은 정말로 특별한 휴식과 위로가 되어 주었다.

내려오는 길, 오후 햇살은 더욱 맨도롱허게 내려앉아 있었다. 억새와 작은 야생화들은 잘 가라고 손짓하듯 살랑거리며 흔들렸다. 쳇망오름에서 보낸 이 짧은 시간은 마음 깊은 곳까지 고요하고 따스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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