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근산에 올라서 보민, 사방이 다 널찍허고 시원허게 트여서 가슴이 확 맑아지쿠다. 속이 시원해지는 오름이라게."
고근산을 찾은 날은 늦가을의 오후 네 시였다. 이 시간 제주는 부드러운 햇살이 아름답게 내려앉고 바람이 적당히 불어 걷기 좋은 때이다. 오름 입구에서부터 펼쳐진 길은 잘 정돈된 나무 계단과 흙길이 이어져 있어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었다.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억새와 야생화들이 햇살 아래 부드럽게 흔들리며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탐방로를 따라 걸음을 옮기며 느끼는 흙의 부드러운 촉감과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제주 바람은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주었다. 오름 중턱에 잠시 서서 바라보니, 제주의 중산간 지역과 서귀포 시내, 그리고 멀리 펼쳐진 바다까지 시원스럽게 한눈에 들어왔다. 삼춘들이 이야기하던 대로였다. 탁 트인 시야 덕분에 가슴 속까지 맑아지는 듯했다.
중턱에서 잠시 쉬며 주변 풍경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억새가 부드럽게 흔들리는 모습과 저 멀리 보이는 제주의 푸른 바다, 그리고 서귀포의 아늑한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모든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문득 삼춘들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고근산에서 제주를 바라보민, 세상 걱정이 다 사라지고 마음이 조냥 평안허게 편해지쿠다. 이런 멋진 풍경이 여기 말고 또 어디 있겠수꽈?"
정상에 이르자 주변 경관은 더욱 장관이었다.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마치 커다란 파노라마 그림을 보는 듯했다. 서귀포 시내의 풍경과 주변의 크고 작은 오름들, 그리고 멀리 펼쳐진 제주 바다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잠시 정상에 앉아 눈을 감고 바람 소리를 들었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 깊숙이까지 맑고 편안한 여운을 남겼다.
내려오는 길, 억새와 야생화들은 오후 햇살 속에서 더욱 부드럽게 흔들리며 잘 가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고근산에서 보낸 이 짧은 시간이 깊은 여운으로 남아 하루 종일 마음을 밝게 비춰 주었다.
고근산 주변은 특별한 관광시설 없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더욱 고즈넉했다. 유명 관광지와 달리 조용하고 편안한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특별한 장소가 될 것이다.
다음에 다시 고근산을 찾는다면, 역시 부드러운 오후 햇살 속에서 탁 트인 전망과 함께 제주의 깊고 편안한 휴식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그렇게 고근산은 제주에 살아가는 내게 언제나 특별한 휴식과 깊은 위로를 주는 장소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