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악(산2번지 일대)

돌 하나, 나무 하나… 조용한 오름의 미학

해발고도: 약 170m

소요시간: 왕복 약 50분

길 상태: 좁은 흙길, 나무그늘길, 얕은 능선

난이도: 쉬움 (편하게 산책하듯 오를 수 있음)

주변 환경: 밭, 돌담, 낮은 울타리, 억새띠, 조용한 마을길

계절 추천: 봄~가을 (햇살 좋고 바람 적당할 때)

분위기: 작고 소박한 오름, 고요한 사색의 공간

문화/설화: '부소'는 예로부터 마을 뒤편에 있는 작은 언덕을 이르는 말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산2번지 일대

부소악은 말이 없다. 오름 중에서도 가장 조용한 쪽에 속하는 이곳은, 크게 휘감는 능선도 없고, 우거진 숲도 없다. 그저 낮고 둥근 곡선 하나가 마을 뒤에 머물러 있다. 주변은 밭과 돌담, 간간이 닭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작은 골목. 아무도 따라오지 않던 날, 나는 혼자 그곳을 찾았다. 초입부터 길은 좁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엔 조금 부족하고, 풀잎이 다리 사이를 스치듯 지나간다. 그늘이 져 있거나, 아예 햇살이 정면으로 쏟아지는 구간이 교차된다. 길가엔 작은 돌들이 불쑥 솟아 있고, 그 위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기에 딱 좋다. 오름은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이 허전하진 않았다. 대신 집중됐다. 작은 벌레 소리, 바람이 나뭇잎 한 장을 뒤집는 소리, 풀잎이 흔들리는 방향, 그런 것들이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어디선가 살짝 흙내음이 진하게 다가왔고, 나는 괜히 고개를 숙이고 흙을 한 움큼 만져보았다. 정상이라 부를 만한 지점은 뚜렷하지 않다. 그저 흙길이 살짝 넓어지고, 바람이 정면에서 얼굴을 때릴 때쯤 ‘여기가 정상이겠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돌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누군가 깎아둔 듯한 나뭇가지 하나가 얹혀 있었다. 아무도 없지만, 누군가 다녀간 흔적. 그게 이상하게 반가웠다. 멀리 제주시내가 아련하게 보이고, 그 너머론 뿌연 바다선도 어렴풋이 드러난다. 풍경이 압도적이진 않지만, 딱 그만큼만 보여주는 그 절제가 참 좋았다. 하산길은 올라온 길 그대로지만, 내려올 땐 조금 더 눈이 열리는 것 같다. 아까 스쳤던 나무 껍질이 유난히 굵어 보이고, 작은 귤나무 가지가 담장 너머로 손 내밀듯 뻗어 있는 것도 보인다. 말 없이, 그러나 많은 걸 느끼게 해주는 오름. 그게 부소악이다. 이 오름은 많은 걸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더 많이 남는다. 돌 하나, 나무 하나, 바람 한 줄기. 그것이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