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아오름(적악, 봉개오름, 붉은오름, 1811-1번지 일대)

제주 현실과 마주하는 오름

해발고도: 약 276m

소요시간: 왕복 약 1시간

길 상태: 붉은 흙길, 얕은 초원 능선, 폐석재길 일부

난이도: 쉬움~보통 (노출구간 있음)

주변 환경: 봉개동 마을, 매립장, 폐건물, 밭, 억새풀지대

계절 추천: 가을 (억새+바람), 겨울 (노출된 풍경 선명)

분위기: 자연과 도시, 개발과 보존이 맞닿은 풍경

문화/설화: ‘적악’은 붉은 흙이 많은 땅이라는 뜻에서 유래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 1811-1번지 일대

봉아오름은 여러 이름을 가진 오름이다. 붉은 흙 때문에 ‘적악’이라 불리고, 마을 이름을 따라 ‘봉개오름’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별명 중엔 ‘붉은오름’도 있고, ‘봉아름’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 이름은 많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관광객보다 지역 주민이 더 익숙한 그런 오름이다. 입구는 밭길과 공사 차량 자국이 섞여 있다. 초입부터 풍경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오래된 콘크리트 배수관과 녹슨 철망, 폐유리 조각 같은 것이 눈에 띈다. 그 옆에선 억새풀이 묵묵히 흔들린다. 바로 아래쪽엔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 이른바 ‘봉개 매립장’이 있다. 오름의 붉은 흙은 예쁘지만, 그 흙을 밟고 오르며 보는 건 도시의 뒷모습이다. 한 걸음씩 오를수록 시야가 트인다. 눈앞에 펼쳐지는 건 풍광이기도 하지만, 현실이다. 매립장을 지나면 밭이 나오고, 그 옆엔 폐창고 하나가 있다. 이질적인 조합이다. 그런데도 풍경은 묘하게 정겹다. 오름 위에서 내려다보면 제주시의 건물들이 아스라이 펼쳐지고, 바다도 어렴풋이 보인다. 정상엔 아무 표지석도, 정자도 없다. 대신 바람이 있다. 붉은 흙 위에선 바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잠시 멈춰 귤을 하나 까먹으려다 포기했다. 손끝이 얼었고, 껍질이 바람에 날려가 버렸다. 대신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 바람은 불쾌하지 않았다. 뭔가를 지워주는 느낌이었다. 이 오름은 전형적인 ‘제주다움’과는 조금 다르다. 사진 한 장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예쁘지도 않고, 오르막길은 불친절하고, 주변엔 쓰레기차가 오가지만, 그게 다 진짜 제주다. 자연과 사람이 살아가는 그 접점, 말끔하지 않은 진짜 현장이다. 하산길엔 길가 돌무더기 위로 억새가 흔들린다. 거기서 문득 생각했다. 이곳은 누구를 위한 오름일까? 유명하지 않고, 기념비도 없고, SNS에 자랑할 뷰도 없지만… 이 오름은 그냥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는 듯했다. 봉아오름. 있는 그대로의 제주를 보여주는, 아무 것도 감추지 않는, 그런 오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