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레오름(산1-1번지 일대)
그날은 바람이 너무 심했다
해발고도: 약 220m
소요시간: 왕복 약 1시간
길 상태: 얕은 흙길, 바람골, 낮은 초원지대
난이도: 쉬움 (오르막은 짧지만 노출됨)
주변 환경: 완경사 밭, 민둥산 같은 풀 능선, 너른 하늘
계절 추천: 겨울~초봄 (바람 세고 하늘 높을 때)
분위기: 고요하지만 강한, 자연과 마주하는 순간
문화/설화: 볼레(벌레) 아닌 바람을 뜻하는 이름, '벌렁벌렁 오름'이라 불림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산1-1번지 일대
그날은 바람이 너무 심했다.
올라가기도 전에 바람에 머리가 흩날리고, 모자가 두 번쯤 날아갈 뻔했다.
주차장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오늘은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괜히 더 걸어보고 싶었다.
볼레오름은 낮고 둥글다. 민둥한 듯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풀들이 살아 있고, 능선은 부드럽게 이어진다. 바람은 그 사이를 비집고 와서 몸을 밀어낸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등산이라기보단 바람과의 실랑이였다.
땅을 밟고 있지만, 마음은 자꾸 떠오르고 있었고,
걷고 있지만 계속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게 됐다.
하늘이 진짜 컸다.
이날 따라 더 넓게, 더 높게 펼쳐진 느낌이었다.
능선에 올라섰을 때는 말문이 막혔다.
뭐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어서.
볼레오름은 풍경을 ‘채워주는’ 오름이 아니라
‘비워주는’ 오름이었다.
머릿속이 텅 비었고, 어깨 위로 짓눌리던 것들이
모두 날아가버린 것 같았다.
정상에서는 잠시 앉아볼까 했지만,
바람이 너무 세서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바람이 싫지 않았다.
이 바람에 오늘의 나를 던져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귤 껍질을 까던 손이 얼었고, 종이컵은 들지 못할 만큼 흔들렸다.
내려오는 길은 더 빨랐다.
바람이 뒤에서 밀어주는 기분이었고,
나는 그저 그 흐름에 맡기고 천천히 내려왔다.
뒤를 돌아봤을 땐, 이미 오름은 멀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웃고 있었다.
볼레오름은 묻지 않는다.
위로도, 격려도, 해석도 없다.
그저 아주 센 바람 하나만 던져주고,
“이제 너 차례다” 하는 것 같다.
그날의 바람은 아직도 내 어깨 어딘가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