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악(보리오름, 산2-1번지 일대)

보리 냄새 가득한 한낮, 돌담을 따라 걷다 어르신을 만난 날

해발고도: 약 200m

소요시간: 왕복 약 1시간

길 상태: 농로, 흙길, 풀길, 완만한 오르막

난이도: 쉬움 (마을길 연결, 누구나 가능)

주변 환경: 보리밭, 감귤밭, 돌담, 폐우물, 마을 창고

계절 추천: 초여름 (보리 누렇게 익는 시기)

분위기: 따뜻하고 정겨운 농촌 풍경, 사람 냄새 나는 오름

문화/설화: 예부터 보리를 말리는 바람이 잘 드는 마을 오름이라 불림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산2-1번지 일대

보리악은 제주 북쪽 자락, 낮고 둥근 능선 하나가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오름이다. 이름처럼 이 오름은 늘 보리 냄새와 함께 기억된다. 마을 사람들은 ‘보리오름’이라 부르기도 하고, 어떤 할망은 ‘저기 바람골’이라 웃으며 말했다. 보리를 말릴 때 제일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 바로 여기라나. 오름 초입은 마을 돌담길로부터 시작된다. 낮은 담장 너머로 잘 말라가는 보리와 하얀 수건을 너는 풍경이 겹쳐진다. 걷다 보면, 할망 한 분이 작은 의자에 앉아 귤을 까고 계신다. "덥수다, 고단허우꽈?" 한 마디에 어쩐지 낯선 길이 정든 길처럼 바뀐다. 귤 한 조각 나눠 먹으며, 보리악은 혼자보다 둘이 걷는 게 좋다는 걸 알게 된다. 풀길을 따라 한 걸음씩 오르다 보면,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계단이 나온다. 그 계단 옆에는 마을 창고처럼 쓰이던 폐우물이 아직도 남아 있고, 그 옆엔 고양이 한 마리가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아이들도 없는 이 시간, 모든 게 조용한데도 참 살아 있다. 정상은 그리 높지 않지만, 논밭과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람은 적당히 불고, 풀잎 사이로 벌레 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이런 데 앉아 귤 먹으면 예술이우다"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실제로 앉아보면, 몸에선 땀이 나는데 마음은 시원해진다. 하산길은 다른 능선으로 이어진다. 무성한 보리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면, 그 소리마저도 여운을 남긴다. 마을 어귀에서 다시 만난 그 할망은 “잘 올랐수과? 다음엔 아침에 오멍 이슬도 보라” 하고 웃는다. 그 말 한마디가 오늘 하루의 결말 같았다. 보리악은 크지 않다. 화려하지도 않고, 대단한 전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긴 ‘사람 사는 오름’이다. 밭일하다 마주치는 눈빛, 담장 아래 말라가는 보리, 낮잠 자는 고양이, 마을 어르신의 인사 한 마디까지. 그 모든 것이 보리악이라는 이름 안에 살아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