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롬이(하논, 1212번지 일대)

제주 남쪽 들녘 속, 고요한 바람이 지나가는 오름

해발고도: 약 190m

소요시간: 왕복 약 50분

길 상태: 부드러운 흙길, 들판 옆 숲길, 완만한 경사

난이도: 쉬움 (산책하듯 오를 수 있음)

주변 환경: 하논분화구, 논밭지대, 감귤밭, 마을 돌담길

계절 추천: 가을 (억새 풍성), 겨울 (고요한 풍경)

분위기: 한적하고 조용함, 자연의 숨결이 살아 있는 오름

문화/설화: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이름 붙여졌다는 마을 전설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1212번지 일대

보롬이오름은 제주 남쪽 하논 지역, 논밭이 넓게 펼쳐진 들녘 한가운데 자리잡은 조용한 오름이다. ‘보롬’은 제주어로 바람을 뜻하고, 이 오름은 진짜 바람이 곱게 스쳐가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하논의 바람 오름’이라 불렀다고 한다. 하논분화구의 완만한 곡선 속에 스며든 이 오름은 낮고 소박하지만, 누구보다 깊은 숨결을 지닌 곳이다. 오름 초입은 작은 시멘트 농로에서 시작된다. 귤밭과 콩밭이 양옆으로 이어지고, 곳곳에 쌓인 돌담 너머로 작은 창고들이 다정히 보인다. 밭일을 하다 잠깐 앉아 쉬는 어르신이 “어디서 왓수과?” 하고 묻는다. 그 말 한마디에 여행길의 긴장이 스르르 풀린다. 들판 끝에서 숲길이 시작된다. 낙엽 쌓인 흙길은 폭신하고, 계절마다 다른 향기를 품고 있다. 봄엔 갓 피어난 초록 잎이 반짝이고, 가을이면 억새가 능선을 따라 은빛으로 춤춘다. 길은 완만하고 부드러워 어린아이와 함께 걷기에도 무리가 없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볼을 스칠 때면, 마치 “조심허멍 올라가라잉~” 하고 인사라도 건네는 것 같다. 정상에 오르면 제주의 남쪽 풍경이 펼쳐진다. 밭과 논, 저 멀리 바다가 이어지고, 그 위로 하늘이 크게 열려 있다. 군더더기 없는 뷰지만,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여기 참말로 괜찮은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돗자리를 펴고 앉으면, 바람은 여전히 조용하고 귤 향기가 가끔씩 흘러든다. 하산길은 올라온 길과는 조금 다르다. 더 깊숙한 숲길이 연결되어 있고, 바닥엔 솔잎이 수북하다. 걸을수록 발이 가벼워지고, 마음도 가볍다. 마치 무언가를 내려놓고 나오는 기분이다. 길 끝에 도착하면 작은 돌탑 하나가 반겨준다. 누군가의 소망이 쌓였을 그 자리에, 나도 조용히 마음 하나 얹는다. 근처 마을로 들어서면 오래된 우물 옆에 자리한 작은 찻집이 있다. 이름도 없이 운영되는 그곳에선 할머니가 정성껏 끓인 감잣국과 귤청차를 내어준다. “오늘 바람 곱다잉~ 저기 오름 다녀왔구먼.” 여행자에게 그렇게 말을 걸며 웃어주는 그 미소는, 이 오름과 마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보롬이오름은 높지도, 넓지도 않다. 하지만 바람 한 줄기, 흙길 한 자락, 사람 한마디가 모두 온전히 제주다. 빠르게 걷는 사람보다는 천천히 둘러보는 이에게 더욱 많은 걸 보여주는 곳. 조용한 제주의 속살을 느끼고 싶다면, 이곳만 한 데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