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롬이(보름이, 3526-1번지 일대)

바람결 따라 걷는 조용한 오름, 제주의 속살을 담은 산책길

해발고도: 약 210m

소요시간: 왕복 약 1시간

길 상태: 부드러운 흙길과 숲길, 데크 일부

난이도: 쉬움 (가벼운 산책 가능)

주변 환경: 밭, 돌담, 억새풀, 작은 마을

계절 추천: 가을과 봄 (바람 좋고 꽃 예쁠 때)

분위기: 고요하고 은근한 정취, 혼자 걷기 좋은 오름

문화/설화: 마을 사람들이 달이 뜨는 방향이라 부른 오름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3526-1번지 일대

보롬이오름은 제주의 숨겨진 오름들 중에서도 조용하고 은근한 매력을 품고 있는 곳이다. 제주 방언으로 ‘보롬’은 바람이라는 뜻이고, 이 오름은 바람이 참 곱게 지나가는 오름이다. 그래서인지 옛날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보름이’라 부르며, 달빛과 바람, 고요함이 어우러진 자리라 여겼다. 초입은 작은 밭과 돌담 사이로 이어진다. 이 길을 걸으면 어느새 마음이 내려앉는다. “에구, 조온 냄새 난다잉.” 옆을 스쳐 지나는 들풀 향이 그리 말하는 것 같았다. 흙길은 촉촉하고, 길 가장자리엔 민들레며 구절초가 얼굴을 내민다. 딱히 화려한 풍경은 없지만, 걷다 보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오묘한 여운이 있다. 오름 중턱쯤 되면 길이 살짝 넓어지며 나무들이 듬성듬성 그늘을 만들어준다. 혼자 걷는 사람들도 많다. 이어폰을 빼고 걷는 사람이 많다는 건, 이 오름이 주는 자연의 소리가 충분하다는 뜻이리라. 새소리, 바람소리, 멀리 개 짖는 소리까지. 다정하고 편안하다. 정상에 오르면, 먼 바다와 마을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제주의 ‘적당한 높이’가 주는 포근한 풍경이 있다. “야, 여기 막 보멍 귤 까먹으면 예술이겠수다.” 옆 벤치에 앉은 관광객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돗자리 하나 펴고 앉아,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봤다. 그늘에 앉아 있자니, 왠지 마음 한쪽이 포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이 어깨를 한번 쓰다듬고 지나갈 때, 이 오름이 왜 '보롬이'인지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더 가볍다. 돌아가는 숲길은 억새가 양옆을 감싸고 있어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은은한 사각거림을 선물해준다. 아이들 웃음소리, 젊은 연인의 대화, 혼자 걷는 이의 조용한 숨결… 그 모든 것이 풍경의 일부처럼 자연스럽다. 오름 아래쪽 마을엔 작은 찻집이 있다. 그곳에 앉아 마시는 유자차 한 잔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혼자 왓수과? 와도 괜찮수다잉~ 조용하멍 이쁜 데라우게.” 주인 할머니의 말 한마디에, 오늘 하루가 참 따뜻하게 마무리된다. 보롬이오름은 자극적인 풍경보다 은근한 여운을 남겨주는 오름이다. 바람, 빛, 소리, 그리고 잠깐 멈춤의 미학. 조용히 걷고, 천천히 바라보고, 가만히 느끼고 싶은 날이면… 이 오름만 한 데가 또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