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밭 (73번지 일대)

밭과 바람 사이로 고요히 이어진 오름의 흔적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73번지 일대, 다랑쉬오름과 손지오름 사이의 들판 끝자락. 지도에도 조그맣게 표시된 ‘망밭’이라는 이름 하나가 눈길을 붙잡습니다. 오름이라고 부르기엔 낮고, 언덕이라고 하기엔 품이 넓은 이곳은 제주 사람들 사이에서도 ‘오름인지 밭인지’ 헷갈릴 정도로 조용히 자리한 자연의 곡선이우다.

‘망밭’이라는 이름은 문자 그대로 ‘멀리서도 바라보이는 밭’ 또는 ‘바람을 맞이하는 밭’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실제로 이 일대는 예부터 밭농사 지대였고, 높은 지대에 위치해 바람이 세고, 하늘과 가까운 들판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다는 마을 어르신들의 말도 있지요.

입구는 마을 외곽 농로 옆 억새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이정표는 없지만 가볍게 풀을 헤치고 들어가면, 낮게 이어진 구릉지대와 오솔길이 ‘이곳도 오름의 일부였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공식 탐방로는 없지만, 밭 사이로 난 길을 걷다 보면 망밭 언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이 있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걷는다기보다 걸쳐진 풍경을 스며드는 느낌입니다. 아주 낮은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주변엔 억새와 돌담이 드문드문 남아 있어 과거 이곳이 밭과 초지가 섞여 있던 흔적을 보여줍니다. 발 아래 바스락대는 마른 풀잎,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정상이라 부르긴 어렵지만, 언덕 끝에 올라서면 동쪽으로는 손지오름이 조용히 솟아 있고, 북쪽으론 마중오름, 개오름, 마은이오름이 곡선을 이루며 이어집니다. 망밭은 조망을 자랑하는 오름은 아니지만, 그만큼 시선이 땅 가까이에 머무르고, 하늘, 바람, 흙의 리듬에 집중하게 되는 오름이지요.

이 오름은 밭과 자연의 경계선에서 태어난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억새보다 감자와 보리가 먼저 떠오르고, 등산보다는 들일하러 가는 발걸음이 더 어울리는 풍경. 그렇기에 망밭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작업의 공간’, ‘쉼의 장소’, 그리고 때로는 ‘숨겨진 오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산길도 특별한 길 없이 그대로 되돌아옵니다. 내려오며 오름 전체를 바라보면, 이곳이 ‘밭’으로도 보이고 ‘언덕’으로도 보이며, 그 애매한 경계가 오히려 제주 자연의 너그러움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자극은 없지만, 마음이 길게 남는 풍경. 그게 바로 망밭이라는 이름 속에 숨어 있는 제주의 감성이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