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 19-1번지 일대. 다랑쉬오름과 손지오름 사이 평야지대를 지나면, 억새풀 사이로 조용히 솟아 있는 낮고 너른 오름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은 망동산, 또는 제주어로 쇠머리알오름이라 불리는 이곳. 낮은 언덕처럼 보여도 그 속엔 오래된 제주의 기억과, 말을 닮은 풍경이 살아 있는 오름이우다.
‘쇠머리알’이라는 이름은 예로부터 말(쇠)의 머리처럼 생긴 오름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실제로 능선에서 내려다본 오름의 실루엣은 부드럽고 동그스름한 곡선으로, 마치 커다란 말 한 마리가 넓은 들판에 조용히 머리를 누인 모습과도 비슷하지요. ‘망동산’이라는 공식 지명은 일제강점기 지적 정리 과정에서 붙여졌지만,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제주어로 된 ‘쇠머리알’이라는 이름을 더 친숙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오름은 해발 약 190m, 비고 40m 남짓으로 오르내리기 편하고 코스도 짧습니다. 오름 입구는 농로 끝자락에 숨어 있어 이정표를 따르기보다는 억새 사이 길을 찾아 걷는 재미가 있는 곳이지요. 한 발 한 발 옮길수록 바람은 점점 커지고, 억새는 흔들리며 오름 위로 사람을 이끕니다.
정상에 서면 사방이 탁 트입니다. 동쪽으론 개오름과 물찻오름, 서쪽으론 다랑쉬오름과 마은이오름이 능선 따라 이어지고, 멀리 성산 일대까지도 시야가 닿습니다. 해가 기울 무렵, 억새 능선을 타고 흐르는 노을빛이 오름을 붉게 물들이면, 마치 제주 말을 닮은 이 오름이 하루를 닫는 인사를 건네는 듯한 기분마저 들지요.
이 오름의 진짜 매력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유명세에 가려진 덕분에 여전히 조용하고, 제주의 오름답사자들 사이에선 "숨겨진 억새 명소"로 통하곤 합니다. 봄에는 들꽃이, 가을엔 억새가 오름 전체를 덮으며 그때그때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오름의 풍경이 크고 웅장하진 않지만, 그 대신 마음이 맑아지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꼭 다시 오고 싶은 곳이 되지요.
하산길은 오를 때보다 더 부드럽습니다. 짧은 능선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며, 바람 소리와 발자국 소리만이 동행합니다. 오름을 내려와 들판 한가운데 섰을 때, 그제야 비로소 오름의 형태 전체가 눈에 들어오지요.
그 부드러운 곡선이 제주 들판의 품처럼 느껴지는 순간 —
망동산은 단지 언덕이 아닌, 기억의 지형이 됩니다.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많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서 있는 오름.
말과 사람이 함께 살던 시절의 숨결을 간직한,
그 조용한 언덕이 바로 망동산(쇠머리알오름)이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