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 137-1번지 일대. 지도에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름조차 발견하기 어려운 오름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하여 말찻오름. 제주어로는 ‘말이 물을 마시는 곳’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는 이 오름은, 말젯오름, 마은이오름 등 인근 오름들과 함께 말과 자연이 공존하던 마을의 풍경을 이어주는 공간이우다.
오름 입구는 넓은 억새밭 사이로 조용히 열려 있습니다. 간이 주차 공간이나 안내 표지판은 따로 없지만, 소박한 길 하나가 오름 능선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길은 낮은 풀길과 흙길로 이어지고, 경사도 거의 없어 산책에 가까운 탐방 코스입니다. 오름 초입부터는 풀잎 사이로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려오고, 걷다 보면 바람보다 더 조용한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말찻오름은 해발 240m 남짓, 비고는 약 50~60m 정도. 높이는 낮지만 능선의 곡선이 매우 부드럽고 너그럽습니다. 오르다 보면 어느새 억새가 키를 넘기 시작하고, 시야가 트이는 중턱에 이르면 주변 오름들이 얼굴을 내밉니다. 멀리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 동검은이오름이 겹겹이 쌓인 듯 이어지고, 발 아래로는 넓은 송당들판이 단정하게 펼쳐져 있지요.
정상 부근은 제법 평평하고 조용합니다. 바위도 거의 없고, 나무보다 억새와 풀이 주인이 된 듯한 풍경입니다. 특히 가을이면 억새가 만개해, 능선 전체가 은빛으로 출렁이고, 햇살이 억새 사이로 부서지면 마치 바람에 실려 춤추는 듯한 착각마저 들지요. 이곳은 유명 오름처럼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아, 풍경을 독차지한 듯한 여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말찻’이라는 이름처럼, 이 오름은 예부터 마을에서 말을 몰고 와 물을 먹이고 쉬어가던 초지와 연결된 지형이었다고 합니다. 물찻오름과도 인접한 이름 구조를 지닌 만큼, 이 일대는 말과 물, 사람과 자연이 함께 머물던 장소였던 셈이지요. 이름에 담긴 생활의 기억이, 지금은 억새밭 속 조용한 언덕 하나로 남아 있는 겁니다.
하산길은 오를 때보다 더 부드럽습니다. 내려오며 뒤를 돌아보면, 오름은 다시 들판 속으로 스며들 듯 낮아지고, 억새가 그 경계를 지워버립니다. 가까운 거리엔 마은이오름, 개오름, 붉은오름 등 제주 동부 오름벨트의 명소들이 이어지니, 말찻오름은 그 속에서 쉼표 같은 존재가 됩니다. 한 번에 여러 오름을 오를 때, 이곳에서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기 딱 좋지요.
화려하진 않지만, 풍경도 사람도 오래 머물게 하는 오름. 그게 바로 말찻오름이우다. 제주의 오름들이 제각기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이 오름은 아마 이렇게 속삭일 겁니다 —
“말도 물을 마시며 쉬어갔던 곳이라… 그대도 잠시 머물다 가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