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젯오름

제주 동부 평야 한가운데, 말을 닮은 오름 하나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 14번지 일대, 다랑쉬오름과 손지오름 사이 드넓은 들판 끝에 조용히 몸을 누인 오름 하나가 있습니다. 말젯오름, 또는 제주어로 과오름(괘오름)이라 불리는 이 오름은, 높지 않지만 그 존재가 오랫동안 마을과 들을 지켜온 듯한 묵묵한 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말젯’이라는 이름은 ‘말(馬)’과 관련된 유래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이 일대는 오래전부터 말을 기르던 초지였고, 지금도 마을 어르신들 사이에선 "어린 말들이 뛰놀던 오름"이라는 이야기로 회자되곤 하지요. 들판 너머 억새 사이로 둥글게 솟은 그 모습은, 마치 제주마 한 마리가 들판 위에 앉아 쉬는 형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입구는 송당리 마을길을 따라가다 보면, 밭 사이로 억새길이 조용히 열려 있습니다. 이정표는 없지만 뚜렷한 오솔길이 있어 길을 놓치진 않지요. 오름 자체는 해발 230m 안팎, 비고 60m 정도로 낮고, 탐방 시간도 30분 내외로 가볍습니다. 하지만 오르는 동안 바람과 풍경이 말을 건네듯 조용히 동행해 주니, 단순한 산책을 넘어선 사색의 길이 됩니다.

오름 중턱부터는 시야가 서서히 열리고, 정상에 도착하면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 손지오름, 마중오름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북쪽으론 김녕평야와 바다 방향도 트여 있어, 날씨 맑은 날엔 수평선까지도 아련하게 닿습니다. 정상이 크지 않다 보니 돗자리를 펴고 쉬는 이들도 거의 없고, 그저 잠깐 머물며 바람 한 줄기, 풀 냄새 하나를 느끼고 내려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말젯오름의 진짜 매력은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그 순한 존재감에 있습니다. 유명세도 없고, 편의시설도 없지만, 오름 자체가 주변 풍경의 일부가 되어 풍경을 완성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제주를 많이 다녀본 이들에겐 "다랑쉬 가는 길목에 가만히 서 있는 그 오름"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일부 오름답사자들에겐 "작지만 꼭 다시 가고 싶은 오름"으로 손꼽히기도 하지요.

가을에는 억새가 오름 능선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봄엔 잡풀 사이로 들꽃이 얼굴을 내밉니다. 이곳은 단순히 오르고 내려오는 목적이 아니라, 조용히 한 번 멈추기 위한 장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젯오름은 그렇게 오늘도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들판을 내려다보며, 다시 마을로 돌아갈 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