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좌읍 송당리에서 성산 방면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들판. 그 한가운데, 억새 사이로 머리를 조용히 내민 오름 하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오름을 말젯오름이라 부르지요. 제주어로는 과오름, 또는 괘오름이라 하기도 하고요. 높은 산세나 화려한 경치는 없지만, 오름 하나가 풍경과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오름이우다.
말젯오름의 이름은 말(馬)과 관련된 어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부터 이 일대는 말을 기르던 초지였고, 이 오름 근처에는 말 방목장이 있었던 흔적도 남아 있지요. 특히 오름 능선에서 바라보면 지금도 인근 밭들과 풀밭이 조용히 펼쳐져 있어, 제주의 오래된 풍경이 그대로 이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오름 입구는 마을 외곽의 들길에서 연결되며, 길 자체는 짧고 경사도 거의 없어 산책하듯 오르기에 딱 좋은 코스입니다. 계절 따라 들꽃과 억새, 야생풀이 다르게 자라고, 날씨 좋은 날이면 가벼운 운동 삼아 걸어보기에 참 좋지요. 바람이 불 때마다 오름 전체가 일렁이는 모습은 작은 언덕 위에 살아 있는 생명 하나가 꿈틀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정상에 오르면 주변 풍경이 넓게 펼쳐집니다. 북쪽으론 다랑쉬오름과 마중오름, 손지오름이 조용한 능선을 그리고 있고, 동쪽으론 김녕과 세화 방면의 평야지대, 멀리 성산 쪽의 구릉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지요. 높지 않은 오름인데도 이렇게 사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은 참 반가운 선물처럼 다가옵니다.
이 오름엔 탐방객도 거의 없고, 이정표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좋을 때도 있지요. 아무런 계획 없이 들판을 걷다 만나는 오름 하나, 잠시 올라서 능선 바람을 느끼고,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그 단순한 흐름 속에서 제주다움을 진하게 느끼게 됩니다. 이름은 ‘말젯’이지만, 그 품은 소처럼 묵직하고, 고요한 자연 그 자체입니다.
하산길도 오를 때처럼 부드럽습니다. 내려오며 뒤를 돌아보면, 방금 전까지 올랐던 언덕이 금세 들판 속으로 녹아들어 버립니다. 그만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풍경에 스며 있는 오름이라 할 수 있지요.
말젯오름은 유명하지 않습니다. 지도상에서도 가까이 다가가야 이름이 보이고, 사람들의 발길도 드뭅니다. 하지만 마을과 들판, 기억과 자연을 조용히 품고 있는 이 오름은, 오름답게 살고 있는 오름입니다.
늘 그 자리에 서서 바람을 맞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사람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
그런 따뜻한 오름이 바로 말젯오름이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