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와 김녕리 사이, 다랑쉬오름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들판 어귀. 그곳에 위치한 작은 오름 하나는 단순한 풍경을 넘어 제주의 역사와 민초들의 함성이 스며 있는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바로 만세동산, 제주어로는 ‘망동산’ 혹은 ‘만수동산’이라 불리기도 하지요.
겉보기엔 낮고 둥그런 능선을 가진 평범한 오름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1919년 4월 7일, 제주 동부 지역에서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난 현장이우다.
해발 약 154m, 비고는 50m도 채 되지 않아 잠시 들렀다 가기 좋은 오름이지만, 그 안에는 제주인들의 깊은 뜻과 함성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구좌 주민 수백 명이 이곳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그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이 구속되고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마을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지요.
탐방은 오름 남쪽의 들판 쪽에서 시작됩니다. 들길을 따라 오르면 수풀과 억새가 드문드문 자라 있고, 능선까지는 10분이면 도달할 수 있습니다. 길은 완만하고 짧지만, 올라가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무게가 실리는 느낌이랄까요. 정상에는 ‘만세동산’이라 새겨진 작은 기념비와 함께, 당시 항일운동을 기리는 간단한 표석이 설치돼 있어, 이 오름이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기억의 장소임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정상에 서면, 북동쪽으론 김녕해안과 바다가 멀리 펼쳐지고, 남쪽으론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의 위용이 보입니다. 바람이 불면 억새가 길게 흔들리고, 그 소리는 마치 100년 전 이곳에서 울려 퍼졌던 함성의 메아리처럼 가슴 깊은 데서 울려옵니다.
오름 자체는 작고 걷기 쉽지만, 그 상징성은 제주도 전체 오름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가집니다. 지금도 매년 4월이면 구좌 주민들과 후손들이 이곳에 모여 독립운동을 기리고, 제주 동부 만세운동의 중심지로 기억되도록 행사도 열고 있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억새밭일 뿐이지만, 이곳의 바람은 여느 바람과 다르고, 능선은 단지 풍경이 아닌 이 땅을 지켜낸 사람들의 무언의 기록처럼 느껴집니다.
하산 후, 인근 세화마을이나 김녕리로 향하면 제주 동부 해안 특유의 소박한 풍경이 이어집니다. 조용한 카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한잔의 커피를 마시거나, 지역 식당에서 전복죽 한 그릇을 먹으며 ‘만세동산’의 감정을 천천히 정리하는 것도 이 오름 여행의 일부가 되지요.
제주의 수많은 오름 중, 풍경이 아닌 ‘역사’로 남은 오름. 작지만 위대한 그 이름, 만세동산. 걷는 발걸음마다 고요한 기억과 깊은 존경이 함께 흐르는 공간.
그 오름에선 늘 누군가가 조용히 이렇게 외치고 있는 듯합니다 —
“잊지 맙서. 여가, 우리 조상이 소리 질렀던 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