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보기오름

마주 보며 서로를 살피듯, 겸손하고 단정한 오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인근, 조용한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어느새 낮고 완만한 능선 하나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이 오름의 이름은 마보기오름. 또는 맞보기오름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제주어 ‘마주 보다’, 혹은 ‘서로를 살핀다’는 뜻에서 유래된 이 이름은, 주변 오름들과 마주 보고 선 위치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집니다.

처음 오름 입구에 다다르면 “이게 오름 맞아?” 싶을 정도로 나지막합니다. 하지만 그 소박한 외형 안에는 제주 오름 특유의 곡선미와 따뜻한 풍경이 숨어 있지요. 주변엔 밭과 목장이 조용히 펼쳐져 있고, 차량 통행도 거의 없어 그야말로 ‘제주 속의 제주’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특히 아침 무렵이면 이슬 맺힌 억새가 햇빛에 반짝이며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내지요.

탐방로는 뚜렷한 안내판이나 데크 없이 흙과 풀로 자연스럽게 다져져 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10분 정도면 오름 능선에 올라설 수 있는데,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면 구좌읍 평야와 멀리 다랑쉬오름, 손지오름, 아끈다랑쉬오름이 마치 서로를 지켜보듯 배치되어 있는 게 인상적입니다. “마보기”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구나 싶은 순간이지요.

정상은 아주 작고 단정합니다. 주변의 거대한 오름들에 비하면 웅장하진 않지만, 오히려 그 조용한 조망이 사람 마음을 더 단단히 붙잡습니다. 멀리 성산일출봉 방향과 바다의 실루엣도 어렴풋이 보이고, 날씨 맑은 날엔 오름 위에 잠시 앉아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지요.

마보기오름은 탐방객이 거의 없어, 제주 오름답사의 숨은 보석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입체적이진 않지만, 가볍고 순한 곡선을 따라 걷다 보면 걱정거리 하나쯤은 내려놓게 되는 그런 길이랄까요. 주변엔 큰 농장들과 메밀밭, 감귤밭이 있어 계절에 따라 풍경도 제법 달라지고, 특히 가을이면 억새가 능선을 타고 하늘로 퍼지는 모습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하산길도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평온합니다. 내려오며 마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작은 노란 들국화나 들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간간이 지나가는 트럭 소리마저도 정겹게 들릴 정도지요. 근처엔 세화 해변, 김녕 성세기해변, 월정리 카페 거리까지 차로 10~15분 거리라 오름 탐방 후 바다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도 좋습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마음을 길게 남기는 오름. 크지 않아도 마주 보는 이에게 진심을 전할 줄 아는 마보기오름은, 제주의 수많은 오름들 사이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겸손한 친구 같은 존재이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