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조천읍 와산리에 위치한 들리오름, 또는 제주 사람들은 ‘들위오름’이라 부르지요. ‘들 위에 솟은 오름’이라는 뜻 그대로, 마을과 밭들 너머 평평하게 펼쳐진 들판 한가운데서 조용히 몸을 일으킨 듯한 모습이 인상적인 오름입주게. 크지 않고 높지도 않지만, 그 아담한 품 안에는 제주의 고즈넉한 매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오름 입구는 와산리 마을 안쪽 농로에서 시작됩니다. 초입부터 길은 평탄하고 흙과 잔디가 뒤섞인 듯 부드럽습니다. 주변은 한눈에 들어오는 밭과 초지가 펼쳐져 있고, 바람이 불면 멀리서도 풀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합니다. 걷는 내내 사람보단 새와 곤충, 바람과 해가 친구처럼 곁을 지켜주지요.
길은 능선 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며, 중턱에 가까워질수록 제주 특유의 오름 곡선이 드러납니다. 이름처럼 들판 위에 얹혀진 둥그스름한 능선은 마치 억새이불을 덮고 누운 것처럼 부드럽고 평화롭습니다. 특히 가을엔 억새가 오름 능선을 따라 풍성하게 피어나고, 햇살이 억새 줄기마다 스며들면 바람에 따라 황금빛 물결이 출렁이곤 하지요.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시야가 트입니다. 동쪽으론 성산 일대와 바다가 어렴풋이 보이고, 서쪽으론 교래리 방향과 다랑쉬오름, 아끈다랑쉬 같은 대형 오름들의 실루엣이 펼쳐집니다. 높지 않은 오름이지만, 오히려 그만큼 풍경을 감상하기엔 부담이 없어 좋지요. 앉아서 쉬기 좋은 바위 몇 개가 흩어져 있어 간단한 간식이나 물 한 모금 마시며 머물기에도 좋습니다.
들리오름은 관광객보단 현지 사람들이 아침 운동이나 산책 삼아 오르내리는 곳입니다. 그래서 상업적인 시설이나 표지판 없이, 자연 그대로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지요. ‘걷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장소이기도 하고, 무언가 특별한 장면이 없어도 그 자체로 위로가 되는 오름이우다.
하산길은 같은 능선을 따라 돌아오면 됩니다. 능선을 걸을 땐 바람이 얼굴에 닿는 느낌이 더 선명하고, 걸음걸음마다 들꽃과 풀잎이 인사하듯 발길을 간지럽히지요. 내려오면 다시 와산리의 조용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곳엔 간단한 간식이나 차를 즐길 수 있는 마을식 휴게 공간이 있고, 차를 조금 몰면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손지오름 등으로도 연계 가능해 반나절 오름 코스로 구성하기에 딱 좋습니다.
들리오름은 뚜렷한 봉우리나 극적인 풍경은 없지만, 오히려 그 조용함 속에 깊이가 있습니다. 거창한 설명 없이, 걷는 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오름. 그래서일까, 한 번 다녀오면 그 단정한 이름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이 들리오름이우다.